‘Edward Knippers’의 기념비적인 그의 그림에서는 다른 현대 기독교 미술가와는 다른 독실한 기독정신이 담겨져 있다. 여느 현대 화가나 조각가가 영감을 얻기 위해 문자 그대로 종교적인 주제를 의지하는 면을 같이 사용은 하지만 그것과는 차별되는 신선하고 활기찬 스타일을 유지해 가는 것이 특징이다.또한 더 나아가 Knippers는 전통적인 기독교 주제와 사실 표현주의적인 것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균형을 만들어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성서도 현대 사회도 아닌 시대를 초월한 세계에 존재한다. Knippers는 작품의 존재들을 우리의 상상 속에 밀어넣고, 우리 각자의 마음이 그들을 선택한 나름대로의 시간의 기억에 놓이도록 한다. 이 작품 속 존재들은 이전 시기의 특정 예술가들의 모습을 모방하지는 않지만, 어느 못지않는 강력한 해부학적 감각과 몸짓을 불러일으킨다. – 프레데릭 R. 브란트 ( Frederick R. Brandt )
작품설명
인간의 몸은 나의 예술적 상상력의 중심에 위치한다. 왜냐하면 몸은 창조, 성육신, 그리고 부활의 기독교 교리에서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영혼과 육체의 분리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육신과 피를 우리의 그 분에 대한 믿음의 중심에 놓으셨다. 만약 성육신의 사건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서 그 분의 독생자를 참된 피와 참된 육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내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된다.
이단은 우리가 육신과 피의 실질적 존재를 최소화하려 할 때 나타난다. 하지만 믿는 자들조차도 진실을 외면하고 적당히 자신의 마음이 편한 선택을 해오곤 했다. 물질적 존재는 다소 복잡하다. 그것은 까다롭고 항상 통제할 대상이 된다. 기술발전의 이유로 우리의 상호간 의사소통은 점점 소홀해지고 있고 오히려 실제가 아닌 스크린 상의 가상의 이미지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우린 인간의 상호작용, 심지어 내면의 의식적인 부분까지도 현실에서 가상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현실 세계의 물리적 존재에 대해 마주할 때, 오히려 이는 불편함만 가중시키고 있다.
물리적 세계에 대한 이러한 불편함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우리 육신에 대해서 음란물과 다른 성적 착취를 포함한 성적인 우상숭배에서 보여지는 육적인 창조물을 경배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일종의 영지주의에 의존하는 것으로 물리적 창조물의 중요성을 거부하고 하나님께서 ‘선’이라고 명하신 것을 ‘악’이라고 경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것이나 우리의 것이나 모두에게 육신은 신비스러운 것이다. 우리의 육체적인 것은 경배되어서도 또 무시되어서도 안 되는 반면 그리스도의 것은 경배되고 영화롭게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을 주장하고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일으켜 세우신 하나님께서 우리 또한 일으켜 세우실 것임을 믿는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최종 대가를 치르셨다고 믿는다. 만일 그 분께서 우리에게 그 분의 마음만을 주셨다면, 혹은 그 분의 치료만을 주셨다면, 혹은 그 분의 사랑만을 주신 것에 그쳤다면 이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우리를 위해 희생되어진 그 분의 육체없이 그 분의 희생은 불완정할 것이고 우리는 길을 잃게 될 것이다. 깨어지고 희생된 육체없이는 구속의 부활도 없기 때문이다.